혈우병, 중증도 따른 치료보다 '개인맞춤형치료' 필요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은진 교수에게 듣는 '혈우병' 혈우병 환자마다 자연출혈 유발하는 혈액응고인자 활성도 달라 약물반응도 모두 달라 약동학검사 기반 개인맞춤형치료 요구돼 출혈 의심될 때는 응급실 가기 전에 '응고인자주사' 먼저 맞아야 혈우병 환자, 운동 필수…모든 운동 가능하나 축구 시 헤딩 금물 혈우병(Haemophilia)은 X염색체의 긴 부위(장완) 끝부분에 위치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내 응고인자가 부족해 출혈을 유발하는 유전성희귀질환이다. 혈우병은 혈액응고인자 8번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일 땐 '혈우병A', 혈액응고인자 9번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일 땐 '혈우병B'로 분류하는데, 출혈을 유발해 심각하게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혈우병A와 혈우병B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런 까닭에 과거에는 생명 유지를 위해 수혈이 혈우병의 치료법으로 쓰인 적이 있지만 지금은 혈우병A와 혈우병B 모두 유전자치료제까지 개발돼 있을 만큼 치료환경이 급변했고, 이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혈우병 환자도 '개인맞춤형치료'를 통해 충분히 건강한 사람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혈우병 명의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은진 교수를 만나 혈우병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은진 교수. 사진 제공=대구가톨릭대병원 - 혈우병은 전 세계적으로 1만 명당 1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유전성희귀질환으로 알려졌는데, 국내도 비슷한가? 혈우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초래되는 질환으로 인종이나 국가 간 차이 없이 1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한다. X염색체 열성유전을 하는 까닭에 남성 환자가 훨씬 많다. 그래서 혈우병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료진은 남성 5,000명 당 1명 비율로 생긴다고 많이 얘기한다. 우리나라 인구를 대략 5,000만명이라고 치고, 남자를 그 절반으로 보면 2,500만명이니 국내 혈우병 환자는 대략 5,000명은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재 국내 혈우병 환자로 등록된 사람은 2,300명이 안 된다. 한국혈우재단이 매년 혈우병백서를 발간하는데,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 국내 혈우병 환자는 2,240명(혈우병A 1,789명·혈우병B 451명)으로 집계됐다. 모든 혈우병 환자가 현재 진단이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혈우병에서 진단이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 국내 절반 이상의 혈우병 환자가 미진단 상태인데, 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보는 것인가? 혈우병은 X염색체의 장완 끝 부위 두 곳인 혈액응고인자 8번이나 9번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F8 유전자이나 F9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유전자 이상도 종류가 있는데, 살짝 이상이 있는 경우가 있고 크게 이상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전자에 크게 이상이 있는 경우보다 살짝 이상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이 국내 혈우병 환자가 응고인자약제에 대한 항체 발생률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혈우병 환자의 항체 발생률은 25~30%로 보고되는데, 한국인 혈우병A 환자는 5%, 혈우병B 환자는 2%도 안 될만큼 적다. 항체는 우리 몸이 내 것이 아닌 게 들어왔을 때 만든다. 유전자 이상이 심한 사람은 내 몸에 내 것이 거의 없어서 항체를 많이 만드는데, 국내 환자는 유전자 이상이 심한 사람이 적어 항체 발생률이 낮다. 또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를 살펴봤을 때도 현재 등록된 환자 중 중증 환자가 훨씬 많다. 혈우병A 환자 중 혈중 혈액응고인자 8번의 활성도가 1% 미만인 중증 환자 비율이 70%, 1~5%인 중등도 환자 비율이 15%, 5~40%인 경증 환자 비율이 15%이다. 혈우병B 환자도 혈중 혈액응고인자 9번의 활성도가 1% 미만인 중증 환자 비율이 50%, 1~5%인 중등도 환자 비율이 25%, 5~40% 경증 환자 비율이 25%이다. 이는 자연 출혈 위험이 높은 국내 중증 혈우병 환자들은 거의 다 발견이 되고 있고, 자연 출연이 거의 없는 경증 혈우병 환자들의 진단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군대생활을 하다가 외상을 입거나 나이 들어 치과치료나 폴립 제거 등을 하다가 지혈이 잘 안 되거나 수술을 앞두고 혈액응고검사를 하면서 이상이 확인돼 진단되는 혈우병 환자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경증 환자들이다. - 갑자기 심각한 뇌출혈과 같은 자연 출혈이 위험이 높은 중증 혈우병 환자나 그 보다 자연 출혈 위험이 낮지만 자연 출혈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중등도 환자는 어떻게 진단되고 있나? 혈우병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산전진찰로 양수검사에서 태아의 혈우병 여부를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가족력이 있는 환자는 중증도와 상관없이 조기에 발견 가능한 상황이다. 혈우병 가족력이 없거나 양수검사를 하지 않은 경우, 중등도 혈우병 환자는 한 돌 이후 보통 세 돌 정도됐을 때 활동이 늘어나면서 약한 외상을 입으면서 흔히 발견된다. 눈에 띄는 출혈이 생기기 때문에 아이를 병원에 데려오면서 진단되는 것이다. 중증 혈우병 환자들은 보통 돌 전에 진단된다. 빠르면 엉금엉금 길 때쯤, 늦어도 아장아장 걸을 때쯤 진단이 거의 된다. 중증 혈우병 아기가 기면 그 자극으로 출혈이 생겨 무릎이나 발목 같은 곳이 잘 붓는다. 이때 아이들이 아파서 잘 안 움직이고 그 부위가 붓고 벌겋게 되고 열감이 있는 데다 옆구리 같은 다른 신체 부위에 멍이 같이 생기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부모가 이상을 느끼고 보통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온다. 이때 모르더라도 걸음마를 시작할 때쯤 아기들이 곧잘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는데, 그때 고환 주위 엉덩이에 멍이 들어 부모들이 놀라서 병원에 아기를 데리고 와서 중증 혈우병 환아들은 거의 진단된다. 물론 자연분만 중 뇌출혈이 생겨서 혈우병을 진단받는 아이도 있지만 흔치는 않다. 또 커다랗게 혈종을 가지고 태어나 그 원인을 파악하면서 혈우병이 진단되는 아기도 있다. - 산전진찰을 통해 엄마 뱃속에서 혈우병이 확인된 태아의 분만은 어떻게 하나? 태아가 혈우병이 있다고 해서 출혈 위험 때문에 제왕절개 분만을 꼭 할 필요는 없다. 자연분만을 해도 되지만, 아이의 머리가 크다거나 난산 위험이 있다면 제왕절개 분만을 해야 한다. 또 산모가 혈우병 보인자일뿐 혈우병 환자는 아니더라도 간혹 보인자만 있어도 혈액응고인자 활성도가 정상보다 낮은 경우가 있다. 이때는 산모를 위해서도 제왕절개를 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에, 제왕절개 분만을 권한다. - 혈우병은 X염색체 열성유전을 하기 때문에 여성은 혈우병 보인자이다. 그런 까닭에 유전학적으로 보면 여성 혈우병 환자는 없는 것이 맞는데, 여성 혈우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여성은 보통 혈우병 유전자를 가진 X염색체와 정상 X염색체 2개를 갖게 되는 까닭에 혈우병 보인자가 된다. 여성의 X염색체는 2개이지만 1개만 활동하고, 또 다른 X염색체는 비활성화 상태로 있는데, 대부분 정상 X염색체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간혹 정상 X염색체가 덜 활성화돼 혈액응고인자 활성화 비율이 40%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세계혈우연맹(WHF)은 2020년부터 이같은 혈우병 보인자 여성을 경증 환자로 분류하기로 했다. 또 다른 경우에도 여성 혈우병 환자가 나올 수 있는데, 2개의 X염색체 중 정상 X염색체가 아닌 혈우병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X염색체가 활성화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을 사람 이름을 따서 라이온화됐다고 한다. 혈우병 유전자를 보유한 X염색체가 활성화된 여성이라면 중증 혈우병 환자일 수도 있다. - 혈우병의 원인은 F8 유전자와 F9 유전자의 돌연변이인데, 이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초래되는 이유는 '친족 간 결혼'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그 이외에 밝혀진 이유들이 있나? 친족 간의 결혼도 있지만, 전체 혈우병의 25~30%는 사실 환자 대에서 생긴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 경우이다. 빅토리아 여왕 위의 세대는 혈우병이 없다. 빅토리아 여왕의 X염색체에 돌연변이가 나타나 집안과 아무 관계 없이 F9 유전자에 이상이 온 것이다. 이같은 유전자 이상은 엄마가 35세, 아빠가 40세 이상일 때나 부모가 방사선 노출을 받는 직업에 있거나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를 받았을 때 생길 위험이 올라간다. - 혈우병A와 혈우병B에 특징이 있나? 혈우병A와 혈우병B는 사실 중증일 때는 증상이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만큼 비슷하다. 다만 응고인자의 성질을 보면 8번 인자는 '양'의 문제, 9번 인자는 '기능적' 문제가 많아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인다. 양의 문제가 큰 8번 인자는 몸에 내 것이 많이 없으니 치료제에 대한 항체가 잘 생긴다. 9번 인자는 내 몸에 있기는 한데 기능적으로 미숙하거나 잘못된 것이어서 항체가 덜 생긴다. 혈우병A보다 혈우병B에서 항체가 덜 생기는 이유다. 또 8번 인자는 피(혈장) 안에만 존재하지만, 9번 인자는 피 안에도 있고 혈관의 내피세포나 콜라겐과 결합돼 있기도 하다. 8번 인자는 피 안에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반감기를 예를 들어 8~12시간이라고 치면, 9번 인자는 피 안에서 모자라면 혈관 안에 있던 게 떨어져 나올 수 있어 반감기가 24시간 정도로 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약제 개발에 있어서도 유리한 게 혈우병B이다. 사실 혈우병B는 약제 개발에서 앞서나갈 요건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분자가 작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전자치료제가 먼저 개발된 것도 혈우병B이고, 반감기가 긴 약제들도 혈우병B에서 훨씬 더 많이 개발되고 있다. - 혈우병 진단은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통해 이뤄지며, 진단 뒤 혈우병으로 인한 환자의 몸 상태를 알기 위해 추가적으로 어떤 검사들을 하나? 혈우병이 의심되면 혈액응고검사를 해서 실제 혈액응고에 지연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후 우리 몸의 어떤 혈액응고인자에 문제가 있는지 보기 위해 혈액응고인자검사를 해 혈우병을 최종 진단한다. 혈우병은 유전성질환이어서 유전자검사를 하면 좋지만, 흔히 유전자검사를 하지는 않는다. 가족력이 있는 환아는 그 유전자가 그대로 내려온 것이어서 대개 어떤 유형인지 선대 환자로 알 수 있어 굳이 하지 않는다. 때론 유전자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첫번째가 혈우병 원인 유전자 결함이 심해 자가 억제 인자가 잘 생기는 유전자 타입이면 처음에 치료를 시작할 때 치료제에 대한 항체가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두번째로 면역력이 약한 6개월 미만 영아나 더 넓게는 1세 미만 영아까지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미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항체가 생길 수 있어 자가 억제 인자가 잘 생기는 유전자 타입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유전자재조합제제보다 혈장 유래 응고인자제제를 주는 것이 안전하다. 요새는 혈장 유래 응고인자제제나 유전자재조합제제가 크게 상관 없다고는 하지만, 유독 항체가 잘 생기는 유전자 결함이 있는 아이에게는 혈장 유래 응고인자제제를 먼저 써서 항체가 안 생기게 하는 게 좋다. 때문에 이같은 경우에는 아이의 케어를 결정하는데 유전자검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모에게 설명하고 있다. 또 혈우병이 진단되면 신체 검진을 해서 출혈이 의심되는 부위가 있는지 본다. 출혈 의심 부위가 없는데 혈액검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 등이 떨어져있으면 초음파검사로 출혈 부위를 찾는다. 이때 MRI나 CT 검사를 해야 더 정확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검사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초음파검사를 한다. 하지만 혈우병 환아의 의식이 약간 떨어져 뇌출혈이 의심되거나 아이 복부가 부어 올라 복부출혈이 의심되는 응급상황이면 빠르게 뇌나 복부 CT를 찍어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혈우병은 자연 출혈로 연골이 쉽게 망가지고 뼈에 이상이 잘 나타나는데, 이런 이상이 생기는 괄절 부위가 환자마다 달라 혈우병으로 인해 쉽게 망가지는 관절을 '표적 관절'이라고 부른다. 혈우병 진단 시에는 손상된 연골이나 관절이 있는지도 X-ray를 찍어 확인한다. - 중증 혈우병으로 외상 없이 자연출혈로 뇌출혈이나 복부출혈이 생겼을 땐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출혈 위험이 높은 혈우병 환자들은 일반 뇌출혈이나 복부출혈 환자와 치료법이 다른가? 그렇지 않다. 혈우병 환자의 경우 응고인자제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만 다르다고 보면 된다. 혈액검사를 했을 때, 헤모글로빈 수치가 크게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출혈이 심각한 것이니 일반 뇌출혈이나 복부출혈 환자에게서처럼 진짜 수혈도 한다. 또 필요하면 혈관을 막는 시술이나 수술도 해야 한다. 혈우병 환자여서 시술이나 수술이 힘들지 않나 생각하지만, 혈우병 환자에게 부족한 응고인자제제를 모두 채워준 다음에 시술이나 수술을 하는 것은 다른 환자들의 시술이나 수술 위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술이나 수술 30분 전에 응고인자제제를 맞으면 되는데, 혈액응고인자의 활성도가 가장 높을 때 시술이나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어서 가장 안전하다. - 혈우병 치료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출혈이 가장 흔히 나타나면서 혈우병 환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혈우병 합병증이 '혈우병성관절염'으로 아는데, 어떻게 치료·관리를 해야 하나? 건강한 사람은 보통 70대쯤 인공관절수술을 하는데, 혈우병 환자는 30~40대에 인공관절수술을 하는 사람이 있을만큼 혈우병 환자에게는 혈우병성관절염이 심각한 문제이다. 혈우병 환자의 출혈을 조절하기 위해 적정한 응고인자 농축 약제를 정기적으로 투약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응고인자 농도를 유지하는 '혈우병 표준치료'인 예방요법의 가장 중요한 목표도 관절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혈우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혈우병성관절염은 류마티스관절염과 퇴행성관절염의 원인요인이 다 있다. 자연출혈로 관절에 출혈이 생기면 피 안의 철분으로 인해 관절 내에 염증 작용이 일어난다. 우리가 철 성분의 못을 물에 빠뜨려 놓으면 녹스는 것과 같은 일이 혈우병 환자의 관절 내에 일어나는 것이다. 혈우병성관절염은 이같이 염증성 반응으로 인해 일어나는 류마티스관절염과 유사한 화학적 악화도 나타나고, 나이들어 연골이 닳으면서 관절염이 진행되는 '퇴행성관절염'과 같은 물리적 요인도 더해져서 정상인과 비교해 관절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예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예방요법은 3가지로 분류하는데, 관절에 자연출혈이 한 번 있거나 아예 아예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 이때를 1차 예방요법이라고 하며 대부분의 중증 혈우병 환자에게 1차 예방요법이 아주 중요하다. 또 관절에 아직 손상은 없지만 관절출혈이 2번 이상 있었으면 관절 내 염증반응이 있다고 봐서 2차 예방요법이라고 하며, 이미 관절이 손상된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할 땐 3차 예방요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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